너무 가난해서 모을 돈이 없었다. 1
정말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어릴때는 제가 가난한 줄 모르고 자랐죠 적어도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는... 동네 친구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으니 그만그만 하였고 , 특별히 잘 산다는 아이들이 몇명 있었지만, 어린 제 눈에는 한번도 그런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었죠.
그 친구들은 과외를 받으며 공부한단 소리도 들었지만, 나는 학원이 뭔지, 과외가 뭔지, 심지어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와서 복습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맏이인데다, 공부가 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워낙 좋은 머리로 태어나서인지. 학교 수업만으로도 시험은 늘 잘 봤습니다. 하여간 훗날 저는 제 머리속에 든것 팔아서 돈 무지 벌었습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대학 다닐때, 제 하루 용돈은 오백원 이었어요.(85학번) 학교가 가까워 집에서 걸어다녔습니다. (도보로 30분정도) 점심은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핫도그 하나 또는 컵라면 하나 정도로 해결했었어요
점심 먹으러 집에 다녀올 만큼의 거리는 아니라 집에 와서 먹을수도 없었고, 도시락 사다니기도 그 당시엔 무지 챙피했었습니다. 제 친구들중 아무도 도시락 사오는 애들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매일 매일 오백원씩 받는 용돈도, 제겐 늘 모였습니다. 수업이 5시까지 있는 날은 사먹고 일찍 마치는 날은 집에 와서 먹었으니까요
개강파티며 종강파티 같은건 할때마다 2000원씩의 회비를 거두곤 했는데, 그 2000원이 없어서 참석못할때도 있었습니다. 책은 1학년때는 헌책방에 가서 헌책을 사보았구요, 2학년때부터는 선배들 책을 얻어서 보고 돌려주어서, 전 졸업후 가진 전공책이라곤 물려받을 수 없었던 교재 두세권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그 두세권도 원서를 직접 사볼 만큼 돈이 없어서 그 당시는 합법적이었던 복사판 제본해서 사용했습니다. 그 책값도 제가 매일 받는 5백원의 용돈을 모아 해결했구요...
우리 학교는 공립이라 장학금이 참 많았습니다. 과 학생 45명 정도에 1등은 전액, 5등까진 삼분의 이를, 15등까진 삼분의 일을 등록금에서 면제해주어서...대학 가고나서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 해봤습니다. 졸업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는 것이었어요 그 당시 과외금지령이 있어서 여학생이 할만한 아르바이트라고는 커피집 서빙정도였고, 그나마 돈도 얼마 되지 않아서 용돈벌이밖엔... 그리고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전 그런 일은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시험때 일주일 정도 밤새기는 보통이고, 1등을 위해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제가 몸이 아주 아주 약했었는데, 하루 커피 여섯잔씩 마시며 밤새 공부하는 저를 보며 저희 엄마는 어려운 형편이라 공부 그만하고 자란 말 하고 싶어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울 엄마 얼마나 맘이 아프셨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고여옵니다.
1등을 하면 등록금 5천원 냅니다. 학생회비 명목으로 근데 1등을 놓치면, 저는 일수라는 돈으로 등록금 냈습니다. 일등을 놓치고 제가 내야 할 등록금은 16만원 정도였어요
그 돈이 없어 울 엄마 시장에서 일수내서 저 공부시켜셨어요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는데, 제게 어찌 모을 돈이 있었겠습니까? 저축은 제겐 너무나 사치스런 말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살며,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히 벅찼으니까요 전 대학 졸업할때까지 소원이 있었다면, 빨리 시간이 흘러 나이들었으면...하는 바램뿐이었습니다. 나이들면, 조금은 수월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중학교 다닐때 울엄마 노전에서 장사해서 저희들 입히고 먹이셨어요 가끔씩 시장에 나가 장사를 거들었죠 고등학교 다닐때 가게 세를 얻을 만큼 돈이 모였었나봅니다.
여중학교 앞에 무허가 천막같은 건물 얻어서 분식집 시작했습니다. 그 중학교는 사립이었고,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공립이어서 학교는 늘 제가 일찍 끝났어요 세시 반이면 전 하교했으니까요
학교 마치면 바로 엄마가 계신 분식집으로 달려가 장사를 도웁니다. 엄마 혼자 팔기엔 손이 딸리고 아빠는 직장이 있어서 저녁 늦게 마무리 할때나 오셨었죠 장사를 마치고 다음날 할 장사준비까지 마치면 9시가 넘고 집에 오면 10시
숙제는 언제나 학교에서 하고 공부는 수업시간에 외우는게 전부였어요 그렇게 2년정도 벌어서 제가 고3이 되었을때는 시장안에 있는 옷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권리금 1000만원 주고 들어갔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3땐 학교에서 야자라는 것 하며 공부해봤습니다. 대학 들어가기위해...
제 꿈은 서울대 미생물학과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지방 국립대 들어갈 성적밖엔 안나왔습니다. 공부한 학생과 장사한 학생의 차이겠죠?
이제 밥먹고 출근해야 할 시간이라...2탄은 나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