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너무 가난해서 모을 돈이 없었다. (5편)
과외를 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주5일 근무자가 되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밤 12시까지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고
토요일 하루 푹 쉬고 제 시간도 가지고 교회일도 하고
주일은 당연히 주님꺼...
과외하면서 영어가 젤로 딸렸습니다. 특히 재수생 가르치면서 질문에 대답 못하는 일이 몇 번 생기자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원 한번 안다녀보고, 과외한번 안 해봤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도 궁금했구요
결국 시내에 있는 재수생들 다니는 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간 김에 수학도 같이...
수학은 언제나 자신 있었지만, 딴 사람들은 어떻게 가르칠까 그게 늘 궁금했었거든요
학원비도 무지 저렴했죠. 두과목 다 해서 삼만원쯤 했던가???
거기서 재수하는 교회 후배들도 만났고, 대학원 시험 준비한다는 선배도 만났고, 아는 사람들도 많이 오더군요
영어 강의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선생님 지금은 학원 하나 차려서 독립하셨던데,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영어 선생님 중에 최고였어요
전 영어도 수학처럼 공식화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저 같은 이과머리도 영어를 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도 생기구요
그 선생님께 두 달, 또 다른 선생님께 두 달 그렇게 넉 달을 배워서 장사 밑천했습니다.
결국 제가 하는 게 지식장사니까요
배우면서 나름대로 가르치기 위한 노트정리를 따로 했습니다. 성문기본영어 4권 맨투맨 기본 4권, 복사해서 제본하니 어떤 교재도 안부러웠습니다. 저만의 교재가 생긴거죠.
그게 지금까지도 제겐 영어사전처럼 귀하게 쓰입니다.
아무래도 나이 든 학생이 수업을 들으니까 이백여명의 학생들 속에서도 눈에 띄었었나봐요 특히나 모르면 꼭 묻고 넘어가는 터라 몇 번의 질문으로 선생님들과 가까워졌죠
같이 팔공산 올라가 밥도 먹으며(물론 선생님들이 사 주셨죠. 전 그래도 그 학원에선 가난한 재수생이잖아요???)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방법이라든지 영어를 어떻게 하면 이해를 할 수 있나?
과외할 때 별난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한다 뭐 그런 것들이요
물론 그 선생님들 중에서 과외도 따로 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게 있습니다. 수학 선생님이 자신이 과외하는 얘기 해 주셨었는데, 정말 까다로운 학부모가 있었대요. 특히 시간가지고 그렇게 따지셨다네요
보통 출장 과외는 주 몇 회 몇 시간 이렇게 정해져있으니까 십분이라도 선생님이 늦게 도착한다든가, 일찍 일어난다든가 하는 것에 아주 민감한 학부모
그 때문에 싫은 소리 하는 학부모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 소리 한번씩 듣고 나면 더 하기 싫어진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시간만 떼우는거죠
어려운 문제 서너 개 준비해가서 던져주고 학생이 다 풀 때까지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놀다가 나온답니다.
저도 몇 번 써 먹었습니다 그 방법...
하루 두 시간씩 매일 가르쳐주는데도 더 가르쳐 달라는 욕심많은 부모들
그럼 어려운 문제 만들어주고 두 시간 내내 풀게 만들고 마지막에 정리해서 보냅니다.
혹 과외 시키시려는 분들
그냥 선생님께 모든 걸 맡기세요. 알아서 가르쳐주고 성적만 올려달라고 하세요
오분정도 늦게와서 오분정도 일찍 나간다고 열 받지 마세요. 그래도 꼭 해야 할 것은 다 해줄 겁니다
그 선생님들께 제가 과외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고 말했겠습니까? 못하죠. 그냥 시집가서 내 새끼 내가 가르치려고 시간 날 때 배워두는 거라고만 했습니다. 근데 그건 사실이었어요. 전 제 아이들 은 학원이나 과외 안시키고 제가 가르칠거니까요
넉달간 다닌 학원은 정말 제겐 든든한 장사밑천이 되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이 겁나질 않더라구요 그렇게 돈 벌어서 거의 배테랑이 되어갈 무렵 결혼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기란 쉽지 않았죠. 마침 시댁이 가까워서, 아침마다 남편 출근시키고, 설거지 마치고 저는 친정으로 출근해서 과외했습니다.
결혼하기위해 받은 대출금도 갚아야하고, 남동생 졸업도 시켜야하고, 또 둘 다 시집 장가 보내주려면...
부모님들은 더 이상 돈을 버실 수 없었어요 아빠도 퇴직하셨고, 엄마가 다시 시장으로 장사하러 나가겠습니까?
두 동생들이 제겐 숙제였죠. 부모님 생활비도 그렇고...
우리가 따로 분가한게 아니라 몸만 들어가 사는거라 결혼 비용은 별로 안들었어요
혼수로 오백만원 드리고, 패물하고, 옷 몇벌 사고, 결혼식 비용은 거의 부주받은 걸로 해결했으니까요
결혼식 비용으로 천만원 대출받았는데, 그 돈이 남아서 차 한대 뽑았습니다. 프라이드 베타
남편 직장이 경주라 출퇴근하기가 불편했거든요. 경주로 이사가서 살지 못한 이유가 제 과외때문이죠
늘 친정으로 퇴근해 저녁먹고 과외 마무리짓고 시댁 들어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해먹고 또 나오고...
그러다 첫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입덧이 심하진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는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몸이 곤해서인지 임신한지 한달 만에 출혈이 좀... 그래서 아예 친정에서 살았습니다.
과외를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배가 불러도...
그러나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그만두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남아있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나 아니면 안된다고 굳게 믿어주는 아이들...
그러던 와중에 경주로 출근하던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빗길에 미끌어지는 사고로 한달간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기고 시부모님들 그 상황 보더니 경주에 바로 전세 하나 얻어주더라구요 15평 주공아파트였습니다.
배불러 이사하고, 1월에 첫 애 낳고 두어 달 만에 저도 경주로 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만 믿던 아이 고등학교 연합고사 치루고 입학 시키고, 잘 마무리해서 보냈구요.
그때부터 내 가족만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결코 넉넉지않은...
아이 하나 낳고 시작된 신혼생활은 다음에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