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자식 농사 어떻게 지을까요? (삼박자)

생각제곱 2005. 5. 20. 00:12

어떤 분이 리플에 다셨던데,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구요
저도 삼박자 잘 맞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막판에 조금 박자가 안맞아서, 결국엔 꿈을 이루진 못해 아쉬움은 남지만, 아직 끝은 아니니 더 가봐야겠죠?

그 아이가 중학생이었을때, 역시 누군가의 소개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과외선생과 학생간의 기싸움이라고 하나요?
과외 선생의 입장에서 처음 일주일동안 팍 잡지 않으면 두고 두고 아이에게 후달리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숙제도 두배로 내줍니다.(거의 인내력과 성실도 테스트수준입니다. 밤잠 안자고 하지 않으면 못할만큼 엄청 많이 내줍니다. 이건 제 경우만 그렇습니다. 그 아이의 한계가 어느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필수코스죠. 좀 친해지면,대부분 애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거든요. 한국인이 정에 약한 것, 이럴때 더 절실히 느낍니다.)

아직 내 테스트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반항을 하더군요.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그 아이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미안하다 잘못했다 말하면 난 앞으로 주욱 약점 잡히고 말기땜에
그러면 절대로 아이들은 선생말 듣지 않기 때문에 더 강하게 나갔죠

"그럼 나랑 과외 안하면 될거아냐? 니 맘대로 해"
발딱 일어서서 나가더라구요. 여자 아이 특유의 자존심은 아니었을텐데...

그날 저녁 엄마가 아이 손잡고 찾아왔습니다.

과외비 돌려받으러 오셨구나, 그냥 다 돌려드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 예상외의 행동
제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더군요
아이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그리고 아이더러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그날 그 녀석 집에 가서 무지 두들겨맞고 제게 끌려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 아이에게 내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무서운 엄마때문에...
어찌되었거나 시키는대로 말 잘 들으니 저는 수월하게 공부시킬 수 있었습니다.

중3
피아노를 전공할 것인지 공부를 계속할 것인지
예고를 갈 것인지 인문계를 갈 것인지 제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으시더라구요
제가 뭘 압니까? 대학에서 피아노 가르치시는 분과 친분이 있어서 그분께 조언을 구했죠
결국 공부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인문계 갈 준비를 했습니다.

연합고사도 없어졌고 고등학교는 평준화가 되었으니 반에서 1등하나 10등하나 고등학교 들어가기는 똑같았습니다.
문제는 고등학교 가서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있었죠

피아노를 오래 쳐서 그런지 그 어머니의 엄한 교육 때문인지, 그 녀석 끈기 하나는 끝내줍니다.
오래 앉아 공부하기가 특기였죠.
성적은 머리 좋은 아이보다는 노력하는 아이가 앞서나봅니다.
그 아이는 노력하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수학 같은 경우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늘 왜 그런 공식이 생겼고, 왜 그렇게 풀어야 하는지를 질문했던 아이
어떻게보면 과외하기엔 아주 까다로운 그런 아이였지만, 그 아이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저 역시 과외실력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과외 10년 넘어가니 거의 만능이 다 되어가더군요.

반에서 1등은 하지 못했지만, 그 어머니 제게 아이 1등 시켜달라고 한번도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저 또한 중학교 다닐때 1등은 아무 소용이 없노라고 주장하던 터였기에 그 어머니 만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지렁이를 사랑스럽게 만지는 아이
모든 곤충을 징그럽다 하지 않고 친구처럼 만지던 아이
그 아이의 꿈은 법의학이었어요

그 정도라면 의대 공부를 해도 적성에 맞지 않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연세대 의대를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비록 중학교때 1등하지 못해도 고등학교 가면 성적이 한번은 뒤집힐 수 있다고
중학교 내신은 고등학교 들어갈 정도로만 하고 고등학교 영어랑 수학을 미리 당겨두자고...

영어는 크게 손댈게 없었습니다.
파닉스부터 시작해서 거의 그 학습지 프로그램 종료할만큼 중3때 이미 마쳤으니 수능 영어야 누워서 떡먹기였겠죠?
수학은 그 당시엔 공통수학과 수학1까지
적어도 그 정도는 해두고 들어가야 만약 이과를 가더라도 수학2정도만 고등학교서 하면 될거라고 믿었기에
공통수학부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열심히 문제를 풀어오더라구요
중3 다니는 1년동안 수학 1까지 다 때고 들어갔으니까요

고등학교 배치고사 치던 날
그 당시만 해도 영어는 문법적인 문제들도 제법 있었는데, 전교 8등했다며 자랑하더라구요
그러나 아쉽게도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서울로 전학가는 바람에 저랑의 과외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서울 가서도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아님 영 수  미리 선행학습한 덕분이었는지, 1학년 1학기때 롯데백화점 장학금을 탔다면서 자랑하는 전화를 했더라구요
정말 큰 돈이었어요. 거의 반년치 과외비였으니까요.

그 이후론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고 방학때 대구 놀러오면 한번씩 만날뿐 거의 잊고 지냈는데, 제가 낮에 컴퓨터 할때마다 접속해있더라구요
학교에서 컴퓨터 시간이라 그런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학교에 매일 가지 않고 있었어요

이유는
선생님들이 너무 실력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말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수학 원리 때문에 선생님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나봐요
그래서 이미 찍혀버려서 학교 생활이 재미없었을지도 모르죠

그 아이의 어머니 제게 전화하셔서 아이 좀 잡아 달라고..
그러나 제가 여기 일 접고, 내 아이들 두고 서울로 올라갈 수가 있어야죠
그냥 전화로 설득하고 달래고 협박하고
그렇게 방황하다가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졸업을 했습니다.

물론 그 기간동안 그 어머니의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탔겠습니까?
항상 삼박자 잘 맞춰서 그 아이 공부시키는데 모든걸 걸고 있다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해 줄 수  있는건 없고 마음만 아프더라구요.

거리가 멀어지면 사랑도 식는다고 하나요?
사랑이 있으면 뭐합니까? 너무 멀리 있는걸...

그 몇달간의 방황이 그 아이에게 치명타였고, 그로 인해 연세대 의대는 물건너 가버렸습니다.
무단 결석 이었으니까... 언제까지 안나오면 자퇴할 수 밖에 없었던 만큼 아슬아슬하게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니까...

그래도 올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은 재미있는 새내기 생활 하고 있습니다.
앞날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비록 남들보다는 더 심한 사춘기를 앓았었지만, 앞날은 남들보다 더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밤은 그 아이를 위한 기도를 드려야겠어요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던 선생님이었어요.

일년동안 컴퓨터 배워서 올해는 제 엉성한 홈페이지 고쳐준다고 했는데... 그 약속 기억하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전화 한통 넣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