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 어떻게 지을까요? (12탄 )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키는 멀대만큼 크고, 얼굴은 아주 순하게, 그리고 참 잘생긴 남학생 중 3이었어요 경주에서 과외할 때 였는데, 대부분은 과외가 소개로 이어지니까, 내가 과외하던 여학생의 어머니랑 그 아버지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분이셨어요 고등학교, 인문계 좀 보내달라고.. 연합고사가 있었던 당시, 그래도 경주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경주고, 계림고, 신라고 순이었죠 신라고가 인문계였기에 거기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꼭 좀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다행히 3월이라 시간은 넉넉했죠. 첫날 수학을 시키는데, 정말 모르더군요. 그나마 더하기 빼기는 할 줄 알아서, 방정식부터 새로 가르쳐서 인수분해까지 시켰습니다.
숙제 무진장 내고, 덜해오면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아마도 제일 많이 때렸던 학생이었을겁니다. 늘 종아리에 멍 떠날 날 없었죠.
근데 참 착했어요. 반항한번 안하고 내 말을 참 잘들었어요 빗나갈법도 한데... 할머니랑 아버지랑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어머니는 왜 안계신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혼자 맞는게 억울해선지 친구들도 두어명 같이 공부할거라고 데리고 왔는데, 친구들은 제가 안때렸어요 제 철칙이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는 학생은 때리지 않는다. 화가 났을땐 때리지 않는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때리지 않는다. 아이가 반성하기 전에는 때리지 않는다.
좀 이상한가요? 그 녀석은 내가 아주 좋아했던 아이고...처음부터 끌렸어요 너무 너무 잘해주고 싶은 아이,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아이...보기만 해도 사랑이 쏟아오르는 아이
원래 사랑은 자기가 타고 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들 가르치다보면 내 아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편애가 되겠죠?
그러나 인간인지라...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역시 편애하는 마음이 드는것을 어쩔 수 없더라구요
일년을 죽도록 공부시켜 반에서 거의 꼴찌하는 아이, 연합고사 잘보고 그래도 세번째 인문계 고등학교인 신라고등학교 합격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게 고등학교 입학하고 그 아이는 과외를 그만두었어요 목표달성 했으니까요
그리고 몇년이 흘러 그 아버지가 전화가 오셨더군요 약주 한잔 하시고서..
"선생님, 그때 왜 선생님이 우리 아이 인문계 넣어줘서,.. 지금은 훈이 인문계 들어간게 후회가 됩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지만, 결과가 나빠서 마음은 아직도 씁쓸합니다. 지금 뭘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십년전에 중3이었으니 지금쯤은 군대도 다녀왔겠죠?
그러나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어요 저도 대구로 이사를 왔고, 대구 와서도 여러번 이사를 하면서 전화번호도 바뀌고 해서..
그러나 지금도 경주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자주 생각이 나요. 참 인간적으로 친했던 아이들, 그리고 참 좋았던 부모님들...
하나 하나 다 적어두고 싶은 아이들이 참 많이 있거든요
도훈이 아빠를 닮아 키도 훤칠하게 크고 잘 생겼던 아이였는데, 꼭 인문계 넣는것이 전부는 아니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어떻게든 인문계 가서 대학 가야 한다는 사고가 꽉 박힌 제 머리속으로 인문계 억지로 보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끔 한 사건이어서
요즘도 공부 좀 못하는 아이들보면 제가 우겨서 인문계 넣으려고 하다가도 제동이 걸립니다 나중에 원망이 돌아올까봐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만이 인생의 성공이 아님을... 아이 적성에 맞는 일 찾아 시킬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할텐데, 부모의 욕심이 늘 앞서게 되고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공부도 잘해야하고 키도 더 커야하고 얼굴도 더 잘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도 항상 웅크리고 있는 그런 엄마일뿐입니다.
쓰면 쓸수록 자식 농사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처음엔 과외 보따리 풀어두면 죽을때까지 할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명쾌한 결론이 나올줄 알았는데 이렇게 공부시켜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함께 이런 아이 저런 아이 얘기 나누며 함께 정답을 찾아나가리고 해요
괜찮으시죠? 여러분의 지혜도 꼭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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