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 어떻게 지을까요? (13탄, 성적때문에 꿈을 포기한 아이)
어제는 비지찌개를 끓여서 정말 맛있게 밥 한그릇을 뚝딱했습니다. 찌개를 끓이면서부터 먹을때까지 그리고 설거지할때도, 그 냄비를 보면서, 영준이 엄마의 사랑과 믿음과 관심이 십육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제 마음에 전달이 되고 있었어요. 처음 과외를 시작하고, 한달도 채 안되었을때, 내가 붙인 광고보고, 과외하겠다고 전화해준 어머니셨죠.
초1, 초3 두 형제. 그 중 형이 영준이였고, 동생은 현곤이 둘 다 머리는 너무 너무 좋았는데, 영준이는 공부보다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때 컴퓨터 분해와 조립을 자기 맘대로 할만큼...
동생 현곤이 역시 특이한 아이였어요 그 애는 정말 스폰지같았어요 한번 읽으면 머리속에 그대로 입력이 되는... 시험 공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아이같았죠
1학년 가을 시험을 치는데, 올백을 맞을거라 생각했는데 딱 한문제를 틀려왔더라구요 문제가 아마도 제일 기분 좋은 날이 어떤 날인가? 였던 것 같아요 답은 소풍날인가? 그랬을건데, 현곤이의 정답은 시험치는 날이었어요
현곤이는 시험치는 날 언제나 엄마에게 성적 좋다고 상을 받았으니까 그 날이 제일 좋은 날인데, 선생님은 그 답을 틀린답이라 하셨더군요
한약을 너무 너무 좋아해서, 내가 밥 먹고 마시려고 뎁혀둔 한약을 나 몰래 주방에 들어가서 마셔버린 일이에요. 얼마나 황당했던지... 다행히도 어린애가 먹어도 되는 약이어서 아무 탈 없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현곤이가 우리 집에 올 시간쯤되면, 한약은 꽁꽁 숨겨놓고 먹었죠.
머리 좋은 아이들 특징이 공부 안해도 점수 잘 나오니까, 공부할 수 있는 지구력이 없어져요 그래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점점 떨어지죠
그 당시만 해도 과외도 처음이고, 그때그때 성적만 잘 나오게 하면 전부란 생각을 하던 병아리 과외선생이라 아이에게 미래의 꿈에 대해 얘기할 생각을 못했어요 그렇게 그렇게 오년을 함께 가르치다, 첫아이 가지고 배 불러오니까 과외를 그만두시더라구요
영준이는 중학생, 현곤이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만둘 당시만해도, 영준이가 고등학교 입학 못할만큼의 성적은 아니었어요 다만 초등학교때만큼은 성적이 안나왔을뿐이죠
영준이의 관심사는 여전히 컴퓨터였어요. 변함없이 좋아하는 컴퓨터 그쪽 방면으로 꼭 전공시키고 싶을만큼....
경주로 이사오고도 가끔씩 영준이 엄마가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준 그 냄비를 꺼내 뭔가를 해 먹을때마다 영준이랑 현곤이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흙으로 만든 전골 냄비인데, 뚜껑의 그림이 참 예쁜 그런 냄비에요
제가 제일 아끼는 살림 1호죠 돈의 가치보다 마음의 가치가 더 있다고 느끼는..
영준이가 고등학교 갔을때쯤 전화를 해서 어느 고등학교 들어갔냐고 물으니까 조일공고 갔다고 하더군요 인문계 갈 실력보다 훨씬 낮은 ... 공고 중에서도 아이들이 잘 가지 않는 그런 학교였죠
물론 컴퓨터를 좋아했으니 상고보다는 공고가 낳았겠지만, 그래도 인문계 진학해서,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학과로 가는게 더 좋았을텐데...성적때문에, 바라던 만큼의 일을 못하게 된 것이었죠. 그때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지...
두번째로 절 마음 아프게 한 아이가 있었어요 소개로 온 아이였어요 그 아이를 소개해준 아이는 공부해서 꿈을 이룬 아이였죠
소개해준 영훈이도 고3때 과외를 시작했는데, 첼로를 전공하려고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었어요. 경상대, 영남대, 경북대, 세 학교에 응시하려고 곡도 세 학교것을 연습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집 형편도 생각해서, 경북대가 제일 낳다고 했어요 공납금이 적게 드니까... 경북대는 음대가 실기보다는 성적을 더 많이 보니까 시험을 무조건 잘봐야 했어요
밤 12시 넘게까지 함께 공부하곤 했었어요 그 전에 홍대 미대 들어간 건우가 제게 그랬죠
"선생님 앞으로 고3 오면 저처럼 정석 절대 시키지 마세요. 그거 하나도 도움이 안되었어요. 개념원리 4번 푸는게 정석 4번 푸는것보다 훨씬 좋아요" 서울서 재수하더니 내린 결론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훈이는 정석 펴보지도 않고 개념원리만 4번 풀렸더니, 그 덕분인지. 영훈이 엄마와 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경상대, 영대 다 떨어지고 경북대만 붙었더군요
춤이라도 추고 싶을만큼 감사했죠.
그 아이 소개로 들어온 녀석이었는데, 어릴적부터 동물 외에는 관심도 없다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꼭 수의학과를 가고 싶은데, 그것 말고는 평생 재미있게 할 일이 없는데, 성적은 영 아니었죠
내신이 이미 엉망인데, 수능만 잘 친다고 될것 같지도 않았죠 고2때부터 시작해서 몇달 하다 결국 성적이 생각만큼 안오르니 포기하고 과외도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어느 대학 갔는지 잘 모르겠네요 전화하기도 뭣해서...
처음 공부 시작할당시 대구에 있는 4년제 대학엔 아무데도 못들어갈 정도의 내신이었는데... 수능을 정말 잘친다 해도 겨우 4년제 낮은 과 턱걸이 할까 하는 정도라...아마 수의학과는 못갔을겁니다.
결국 성적 맞춰 평생 해야할 직업이 결정되겠죠?
그런 아이들 보면서, 내 아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성적때문에 못하는 가슴아픈 일은 없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기더군요
조기교육, 선행학습, 저도 안시키고 싶고, 또 아이들 공부로 잡고 싶지도 않고, 아이들을 문제집 푸는 기계처럼 만들고 싶지도 않지만,
문제집 많이 풀수록 시험 성적이 더 좋아지고, 또 성적이 좋아야 자신이 하고픈 일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공부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아직 철도 안든 아이에게 나중에 커서 하고싶은 일 하려면 오늘 공부가 싫어도 해야된다고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래서 아이 생각에 맞춰서 자꾸 얘기하며, 달래가며 공부시키는게 아닐까?
제가 속물이어서 이런 생각 하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아주 조금씩은 선행학습 시키며 조금 앞서 문제집 사다 풀리고 있어요.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발악같은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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