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만이천원으로 왕비되기

생각제곱 2005. 6. 3. 20:29

지난주 목구멍이 뜨끔뜨끔 아팠는데, 열이 나지 않아 그러다 말겠지 하고 두었더니
급기야 편도선에 염증이 생겼다.
몸살기가 겹쳐서, 아침에 출근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에 와서 드러누웠는데, 저녁 약속 잡힌 것이 하나 있어서...그대로 쉴 수 없어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야 했다.

된장찌개에 김치 좀 썰어넣고 점심을 대충 먹고 주섬 주섬 목욕가방을 챙겨, 동네 목욕탕으로 갔다.
내가 젤 좋아하는 때밀이 아줌마가 있는 곳

삭신이 쑤시는 날은 엄마도, 남편도 아닌 그 아줌마가 생각이 난다.

날이 더워서인지 목욕탕엔 손님이래봐야 다섯명도 안된다.
삼천원짜리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도 한분 밖에 없는 곳

그래도 난 그 아줌마가 너무 좋다.

날 보고 반겨주는 아줌마

"좀 있다 저 좀 씻어주세요" 말하고는 대충 몸 헹구고 탕속으로 퐁당
뜨끈뜨끈하니 목까지 담그니, 살만하다.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카락 위로 김이 쏠쏠 올라올때까지 푹 잠겨서 눈감고 있었다.

덥다.
나가야지

시원한 물에 머리 감고, 온 몸에 비누칠하고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 얼굴에 오이 맛사지도 해주세요"

얼굴에 열이 팍팍 올라있을때 아줌마가 시원하게 갈아붙여주는 오이가 넘 상쾌하다.

한평도 안되는 때밀이침대에 누워 있으니 뜨거운 스팀 타올로 얼굴 이곳저곳 맛사지 해주더니 시원한 오이를 붙여준다.
넘 좋다.
머리가 한순간 맑아진다.

뜨거운 타올로 온 몸에 한장 덮어씌우더니 발부터 씻겨주기 시작한다.
앞판, 다 씻고, 물 한대야 부어주면 옆으로 돌아누워주고, 또 물한대야 부어주면 반대로 돌아눕고
또 물 한대야의 신호에 뒤로 엎드리고

그 다음부턴 한참 시간이 흐르니 한숨 푹 잘 생각으로 마음을 놓았다.
꿈을 꾸었나보다.
아줌마가 내 몸에 물을 끼얹는데 잠에서 깨니 "돌아누우세요" 한다.

다시 부드러운 때타올로 한번 더 씻겨주고, 비누거품 내서 정성스레 안마해준다.
기분좋다.
발바닥 각질제거 마치고, 목이랑 어꺠랑 고운 수건으로 한번 더 밀어주고,

"시뿌 한번 해주까예?"
"아뇨, 오늘은 그냥 갈께요. 돈벌러 또 나가야해요"

언제나 내겐 최고의 서비스를 해 주는 아줌마
그렇게 해서 난 그 아줌마에게 만이천원을 지불한다.

사람들에게 시달려 스트레스 많은 날, 온몸이 찌뿌둥한날, 난 늘 아줌마가 그립다.
그래서 목욕가방 대충 챙겨 달려가 한숨 푹 자고 나온다.

온 몸이 매끈거린다.
기분좋게 또다시 나는 일상의 전쟁터로 달려나간다.

이제 하루를 마감하고, 지금부터는 사흘간의 연휴가 시작된다.
여행 다녀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영 컨디션이 좋지않다.
내일은 종일 집에서 뒹굴며 그동안 열심히 부려먹었던 내 몸뚱아리에게 휴식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