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자식 농사 어떻게 지을까요? (다 죽여버릴꺼야)

생각제곱 2005. 7. 11. 08:35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습니다.

첫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 과외를 하는 중에 그 분노가 폭발해서 내뱉은 말입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학교에서 혼나고, 집에서 혼나고,

과외와서 남자 자존심에 울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저랑 과외를 오래해서 정이 많이 든것도 아니고, 제가 마음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그때까지는 안되어 있었던 터라...(과외 시작 이삼개월 정도 밖에 안되었을 때) 그 아이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만한 곳이 없었어요.

 

아빠는 공무원이셨고, 엄마는 철물점을 운영하셨어요.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전교 1,2등을 하는데, 자기는 반에서 중간도 못되는 실력에, 집에서는 누나도 못하는 과외까지 시켜주셨는데, 성적은 엉망이었으니, 엄마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신의 성적이 나쁘다고 자신만 들들 볶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시험 얘기를 하다가, 연필로 책상을 꽝 찍어서 부러뜨리더니 다 죽여버리겠다고 울면서 고함을 지르더라구요

 

솔직히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 한번 안낳아본 처녀였던 때라, 상황이 수습이 안되더군요

무섭기도 하구요

 

그 아이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몰랐기에, 저러다 진짜 사고나 치는 사고뭉치는 아닐지 걱정이 되더군요.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고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엄마랑 통화를 길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그 아이 엄마도 많이 놀라셨는지, 사춘기가 온것 같다며, 앞으로는 말을 더 조심해서 하겠노라고 하시더라구요

학교에도 한번 찾아가보겠다고...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그 아이는 저에 대한 신뢰도가 급속도로 높아졌고,(아마 미안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미술시간에 만든 것이라면서 자기 반에서 자기가 제일 잘해서 높은 점수 받은 것이라며, 저를 주더군요

 

제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중 하나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일이천원 밖에 안되겠지만, 그 마음은 백만불짜리 이상이었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겠다는 증거니까요...(역시 성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그렇게 마음을 다해 믿어주고 따라주자, 그 아이 성적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인문계 원서도 못 쓸 성적이었지만, 나중엔 무난히 인문계 들어갈 만한 실력이 되었어요

 

그러나 전교 1,2등 하던 누나가 과학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자, 누나를 위해서 수성구로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성구 가서도 공부를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었을때,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기 전에, 그 아이를 먼저 이해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진정한 과외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지요.

 

엄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무조건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기 이전에 아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아이의 소리를 먼저 들어주는 것이 공부하라는 말 하기 이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아이에게도 분노가 있고, 아이에게도 공부라는 녀석과 싸우다가 지칠 때가 있으니까요

힘들때 함께 걸어주는 엄마, 그 걸음을 인도해주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한 두가지 지식을 머리속에 넣어주는 것 이상을 아이에게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