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월동준비

생각제곱 2005. 10. 5. 20:34

벌써 월동준비를 해야할 때인가봅니다.

올해는 제일 맛있는 김장을 담을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백령도산 까나리 액젓, 맛있는 육젓과 의성 마늘,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농약 태양초

 

어제는 열근이나 되는 고추를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하나 하나 꼭지도 따서 통풍 잘 되는 푸대에 넣어 베란다에 모셔두었답니다.

 

엄마와 두시간 넘게 고추 붙들고 씨름을 하면서도, 고생스럽다는 생각보다는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은 나 역시 아줌마이기 때문이겠죠?

 

여름 문턱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데, 벌써 김장을 준비해야 하다니...

 

참으로 세월이 빠름을 느낍니다.

 

이렇게 올해도 다 가려나봅니다.

 

크게 해 놓은 일도 없는데, 하루 하루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다가 어느날 문득 달력을 바라보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은건 저만 그런건 아니겠죠?

 

어제 고추를 따면서 생각을 참 많이 했답니다.

 

제가 초보라 워낙 서툴러서, 저희 어머니는 목장갑끼고 한손으로 닦으며 한손에는 가위들고 꼭지를 자르면 된다고 하셨지만, 왠지 손수 닦아 빻을 것 기왕이면 깨끗한게 좋겠다 싶어

 

그냥 어머니께는 물수건으로 닦아서 넘겨주면 내가 직접 꼭지를 따겠다고 했습니다.

 

가위로 자르기보다는 손으로(전 장갑끼는걸 싫어해서 집에 고무장갑도 없어요. 모든걸 맨손으로 감촉을 느끼며 일하죠. 생선 다듬고 나면 종일 손에는 생선비린내가 난답니다.) 직접 떼내는데,

 

그 많은 고추중 댓개 정도가 겉으로 보긴 멀쩡한데, 안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더군요

 

꼭지를 떼는 순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곰팡이 포자들...

 

그런걸 보고서는 도저히 가위로 꼭지만 잘라버릴 수가 없더군요.

 

집은 늘 지저분하게 해 두고 살면서도 꼭 이럴때만 결벽증 환자 행세를 한답니다.

 

혹시라도 벌레 구멍이 난 고추를 보면 그 부분 잘라서 버리고, 속에 벌레가 있나 없나 확인하는 버릇...

 

보통 고추가루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쓰니까 벌레가 생기지 않는데, 실온에 그냥 두고 쓰면 벌레가 생기더라구요

 

아마 말라도 없어지지 않는 벌레 알들때문에 그런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속에서 곰팡이 난 고추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디 들더군요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사람, 속을 철저히 숨기는 사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면서, 두어시간 허리도 아프고 손도 매웠지만 많은 것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월동준비 잘 하도록 해 주시고 또한 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신 저의 스승님께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