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년 만에 찾아뵌 교수님
어제 스승의 날이었죠
저녁때쯤 남편과 함께 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과커플에 연구실 커플이라 지도교수님이 같거든요
공부 할 만큼 하곤 전공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게 이상하게도 교수님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돈벌어서, 성공하면 그때 찾아뵙자. 가라는 길 안가고, 곁길로 갔는데, 성공마저 못하고, 비실비실 겨우 살아가는 모습 보이면, 선생님인들 마음 아프지 않으실까?
그게 아마 스승이 가지지 못하는 제자의 마음일겁니다.
처음 뵙고는 첫 마디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였으니...
그러나 선생님은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이제 삼년이면 정년 퇴임에 몇달이면 학장도 그만 두신다면서
죽기 전에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를 특별히 총애하셨고,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기대에 못미치고, 삐뚤게 나간게 정말 죄송하고, 또 잠시 후회도 되었지만,
지난 십오년의 세월이, 정말 우리는 나름대로 아둥바둥 거리며 열심히 살았고
아직 연봉 1억도 안되지만, 그래도 우리 나이에 자리잡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정말 성공한 것은 아닌것처럼 보일지언정,
적어도 선생님 얼굴은 볼 수 있을만큼이 된 것 같아서 자랑삼아 얘기하고 왔습니다.
"선생님 학교 앞을 지나면서 조금만 더 성공하며 찾아뵙자고 수없이 되뇌었었는데, 이제야 찾아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저녁 사 드리겠다고, 뭐 드시고 싶으시냐고 했지만, 선생님은 비싼 일식집이 아닌 가볍게 드실 수 있는 횟집으로 우릴 데려가셨고, 조촐한 식사를 대접해 드렸습니다.
아마도 제자의 성의만을 받고 싶으셨던 선생님이셨나봅니다.
그동안 뇌졸증으로 쓰러져 너거들 못보고 죽을 뻔 했다고 농담마저 하시는 선생님
비록 세월은 흘러 얼굴에 주름은 잡혔지만, 예전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으시고
예전의 열정은 사라졌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뵙기엔 그 열정이 아직도 그대로이신 선생님,
그 분을 만나고 돌아온 일이 마치 꿈같이 느껴지네요
학교라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전쟁터와는 또 다른 전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지금 다시 그 곳으로 뛰어들라면,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에 내가 공부하던 연구실은 많이 바뀌어 있었고, 또 리모델링되어서 마치 호텔같은 화장실에 (우리가 다닐때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화장실 같았거든요) 우리 후배들은 정말 좋아진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후배들도 만나고, 늘 마음으로 죄책감 느끼며 그리워하던 선생님도 만나뵙고, 정말 뜻깊은 스승의 날을 보냈습니다.
명함 건네 드리며, 언제든 전화주시면 달려오겠다고 약속드리고 (회사에서 차타고 오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스승의 날은 왠지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는 듯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대학 다닐때처럼 열심히 살아간다면, 지금 하는 이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면서, 그때처럼 , 그때 선생님의 말씀처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을 할때는 시간이 지독히도 안가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며 열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시간이 너무나 잘 간다고 하시며, 대학 다닐때의 열정으로 살아간다면 결코 삶이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더 애착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셨다는 선생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