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장수풍뎅이 키우기

생각제곱 2006. 5. 23. 21:34

제가 벌레는 무지 무지 싫어하는데,

아들 녀석이 사슴벌레를 사 달라고 조르고 조르는걸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솔직히 제가 싫어서 아이가 잊어버리길 바랬습니다.)

 

지난 겨울 엑스코에서 곤충 전시회 데려갔다가

거기서 파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두마리 사왔습니다.

암 수 한마리씩 사려고 했는데,

파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어느 놈이 암놈이고 숫놈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그냥 제일 활발하게 노는 녀석 두마리 사왔습니다.

집에 와서 조그만 통에 혼자 있는게 안스러워서

커다란 반찬통(밀폐용기)에 두마리 다 부었습니다.

 

물론 톱밥이랑 같이 말입니다.

꺼내놓고보니 더 징그러운것있죠

도저히 손으로 못만지겠더라구요

 

뒤집어보면 암놈인지 숫놈인지 알 수 있는데

그걸 뒤집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사흘에 한번 스프레이로 물만 주고 키웠습니다.

 

두어달 지나니 톱밥 반, 그 녀석들 똥 반이 되더라구요

 

아들내미 열심히 인터넷 검색하더니

톱밥을 바꿔줘야 한다면서 또 톱밥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톱밥 사서 옮길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말입니다.

 

결국 차일 피일 하다가 애벌레들이 번데기를 만들어서 뒤집어져 있더라구요

한녀석씩 차례대로 말입니다.

 

애벌레가 되니 뿔 단 숫놈 한마리와 뿔 없는 암놈 한마리가 명확히 구분이 되더군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겠죠?

 

숫놈이 일주일 정도 먼저 번데기가 되더니 껍질을 뚫고 나오는겁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암놈이 껍질을 뚫고 나왔어요

도저히 똥 반 톱밥 반인 곳에서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제서야 톱밥이랑 그녀석들 집이랑 놀이목 등을 구입했습니다.

 

작은 진드기 같은 벌레들이 온 몸에 가득 묻어있는걸

붓에 물을 적셔 샤워시키며 벌레들 제거해주었구요

 

일회용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떠서 이사도 시켜주었습니다.

 

밥은 제리뽀나, 바나나, 사과 등을 먹는다고 해서 이것 저것 줘봤는데

제리뽀를 제일 잘 먹더라구요

 

요즘은 쇼핑가면 그녀석들 밥 사러 제리뽀 찾아 다니는 것도 일이랍니다.

요즘 잘 팔지 않더라구요

그냥 슈퍼마켓에는 없고 좀 큰 마트 같은 곳에 가야 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밥 주고, 물 뿌려주고 키우면서 이제는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낮에는 주로 톱밥속에 파고 들어가 지내다가 배가 고파지거나 밤이 되면 나와서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짝짓기도 하더군요

 

힘도 세고, 놀이목도 이리 저리 굴리고 다니고, 귀여운 짓을 많이 해서 그런지 요즘은 애정이 많이 간답니다.

벌레를 싫어했었는데, 요즘은 야외에 나가도 날아오는 벌레들 특징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어요

 

아들 덕분에 또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집에 애완동물 없으신 분들

자녀들을 위해 장수 풍뎅이 한번 키워보세요

냄새도 안나고, 어지르지도 않고,

돈도 많이 안들고 (제리뽀 천원치 사면 한달가량 먹는 것 같아요)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요

걱정해주신 여러님들 감사합니다.

 

다시 씩씩하게 늘 웃으며 열심히 살아가야죠

 

제가 정말 죽고싶을 만큼 힘들때도 웃는 얼굴이 매력이었는데

요즘 너무 힘없이 축 쳐져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웃으며 살아가야죠

 

여러분도 열심히 살아가세요. 그리고 부 우 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