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날 (2/1/토)
아침에 늦잠을 자고 내려가니 그 집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아떼들이 알아서 아침을 차려주었다.
그들은 언제나 숟가락을 엎어 놓는다.처음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놓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먼지 들어가지 말라고 엎어둔다고 했다.
역시 나라마다 문화와 관습이 다르구나...
밥먹고 컴을 하고 노는데 언니가 다른 두 여집사님과 그 집사님의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
오늘은 한글학교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토요일 수업 없는 날은 한글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한글 학교는 따로 건물이 없고 필리핀의 로컬 학교를 토요일만 빌려서 쓴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교회를 새로 지어서 그것을 한글학교로 빌려주자는 말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교회도 큰 건물의 한층을 세내어 쓰고 있다고 들었다.
같이 점심을 해먹고 놀았다.
어제 초대받았던 집에서 내일 예배 마치고 3시에 필리핀 오지 마을에 영화선교를 하러 간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상이도 맡겨두고 가기로 했는데 상이가 나 없으면 울것 같아서 영이만 수아랑 놀게두고 상이는 데리고 가려고 했다.
밤 11시쯤 돌아올 예정이라고 하셨다.
프로젝트로 영화 상연을 한다는데 사업하는 분 회사에서 흰천으로 막도 만들어 두었다고 하셨다.
또한 두주 전에 한번 갔던 곳이라 별 어려움은 없을것이라고 하셨다.
오지 마을에서 원주민을 모으는 모습, 그들이 사는 모습 그리고 예배 드리는 모습등을 찍으려고 했는데 준비해간 비디오 테잎을 거의 다 써서 몇개 더 살려고 백화점에 갔다.
소니 테잎이 세개를 555페소를 주고 샀다.
저녁에는 상이를 위해 뿌리는 모기약과 혹시 잠들지 몰라 포대기를 짐속에 넣고 또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두려움과 기대감을 안고서 잠을 청했다.
여덟째날(2/2/일)
주일이다.
아침에 9시까지 마닐라 새생명 교회에 갔다.
예배 시작은 10시 30분인데 그 전에 성가대 연습이 있어서 항상 그시간에 간다고 하셨다.
두 집사님이 모두 성가대 단원이셨다.
예배의 감격 아마 이국에서 드리는 예배라 그 감격이 더했던 것같다.
찬송을 부르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감격의 눈물이...
예배 시간에 제 5차 의료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분들의 특송 시간이 있었다.
그 의료 선교팀은 "치가소" 라고 하는데 치과 가정의학과 소아과 전문의들이 모여서 구성된 팀인데 치료 중심의 가정 사역을 실천하는 소그룹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참 재미있는 이름의 의료선교팀이었다.
작년 8월부터 준비했는데 구정이어서 모두다 바쁜 의사들이지만 시간을 내기가 쉬웠고 온 가족과 함께 즐기고 쉬어야 할 설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리려는 계획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네그로스 폰테베드라 라는 지역으로 선교사역을 나가려고 하는데 그 지역은 공산군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인데다. 최근에도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로 여러명이 죽은 지역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가기로 했다고 하니
보라카이에 가서 잘 놀고온 것이 미안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수요일 오후에 한국에서 도착해 바로 네그로스행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의 기체결함으로 공중에서 갑자기 비행기가 급강하 하는 바람에 고막이 찢어지는 아픔과 고도가 갑자기 떨어짐으로 정신적인 공항상태까지 있었다고 한다.
비명, 창백한 얼굴, 두려움...
상상만 해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곧바로 저녁 비행기로 네그로스로 가기로 결정하고 무사히 의료선교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특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눈물겨운 감격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문의이기 이전에 헌신자요, 순교 예비자요, 용사들이었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들이 이번에 갔을때는 죽어가는 생명을 둘이나 살렸다고 한다.
마을의 총 인원들 중에서 한번도 병원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삼분의 이나 된다고 했다.
그런 곳에 가서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
나는 선교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예배는 10시 30분에 유치부, 유초등부, 중고등부, 어른예배 모두 같이 드렸다.
교사들은 당연히 어른 예배를 못드린다.
그 나라 사정이 그럴 수 밖에 없을듯하다.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니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와야 하고
보통 한 가정에 한차씩밖에 없으니..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함께 점심을 먹고 성가대는 연습을 하고 마친다.
저녁 예배는 없고 수요 예배는 있고 새벽은 목사님 사흘, 장로님들 돌아가면서 나흘을 한다고 한다.
한달에 한번씩 금요기도회가 있고...
점심은 우리는 방문객이라 목양실에서 목사님과 함께 먹었다.
거기에 또다른 새신자가족이 있었는데 소령이라고 하였다.
6개월간 공부하느라 나와있으며 호텔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 호텔은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콘도같은 호텔이라고 하였다.
점심은 구역별로 준비해 오는데 비빔밥이었다.
아마 돌아가면서 한가지씩 준비해 오는 것 같았다.
정수가가 방마다 있었는데 종이컵이 아닌 플라스틱 컵을 썼다.
나중에서야 인건비가 싼 나라여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에는 모두 한인들만 있었는데 필리핀 여자 서너명이 있었다.
그들은 점심 먹은뒤 설거지 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3시가 되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화선교가 취소되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제밤에 우리가 영화선교 가려고 한 마을의 시장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장례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젯밤에 어렵게 나가서 비디오 테잎까지 사왔는데
너무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여행의 목적이 선교가 아니어서 그랬으리라
전혀 기도로 준비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결과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시내 관광과 전에 의료선교 가던 곳을 가보았다.
어린이 전도협회 필리핀 지사도 멀리 산 위에서 내려다 보고
마닐라 시내도 보았다.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는 자체 정화능력이 있는 바다만큼 큰 호수도 보았다.
아직도 신천과 같은 그런 강가에 판자촌을 지어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더우니까 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
그 나라 법은 1년 반만 아무 땅에서 집 짓고 살면 쫓아낼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란다.
그래서 그런지 그 빈민촌과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부자들의 집이 있었다.
정말 대조적이었다.
아이들은 여러번 의료선교를 받아서 그런지 얼굴이 많이 깨끗해 있었다.
그곳에 처음 갔을때 아이들은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서 곪아있고 머리 밑에 부스럼도 많이 나 있었다고 한다.
머리를 깎이고 깨끗히 씻어주고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고 일주일 후 다시 와보면 많이 나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비타민 한알이 얼마나 얼굴에 생기를 돌게 하는지...
그들에게 항생제나 비타민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한다.
또한 헌옷들 신발들 과자들...
물론 필리핀이란 나라는 물가가 싸서 신발값도 우리보다 훨씬 싸지만 그런 혜택도 못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나라였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가난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비참한 생활상이다.
차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똑같은 모양의 교회가 여러개 있는 것이 보였다.
크고 작고의 문제이지 똑같이 지어져 있었다.
이글레시아 라는 종교라고 한다.
모든 돈이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며 그 나라의 권력층을 잡고 있으며 국민들의 종교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가난한 필리핀 인들을 대상으로 일거리를 제공해주며 포교를 한다고 한다.
천주교가 많은 나라일거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글레시아라는 교회가 그보다 더 큰 우상의 세력이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저녁에는 성가대장 집에서 성가대원들 회식이 있었는데 불청객이었지만 가서 잘 얻어먹었다.
부페식으로 음식을 차렸는데 집이 모두 다 크고 넓으니까 한국인들끼리 그런 시간들을 자주 가질 수 있나보다.
맛있는 한국 음식들로 밥을 잘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 특이한 것은 콩나물이다.
우리 나라 콩나물 대가리의 서너배 정도 되는 크기에 줄기는 겨우 3센티 정도...
그러나 그것도 콩나물이라고 한국의 콩나물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오이도 한국 오이보다 맛이 없기는 했지만...
음식을 준비한 집사님은 어디서 구했는지 고사리무침까지 준비해 두셨다.
한마디로 맛있었다.
즐거운 주일이었다.
아홉째날(2/3/월)
남편은 오늘도 필드에 골프를 치러 나갔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치지도 못하는데 거기서는 너무나 싼값에 셋이서 하루종일 골프치고 밥먹고 사우나까지 다해도 겨우 6000페소 정도면 다 된다고 한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야한다고 집사님이 데려가셨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비행목사님
경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가지고 계시며 필리핀 오지로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아무리 싸다고 해도 골프를 치시다니...(그런데 골프는 잘 못치신단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 목사님 진짜로 비행 목사님이네"
유머가 아주 많으셔서 말씀만 하시면 모두 다 웃는다고
중고등부 담당 목사님이신데 예배도 그렇게 재미있게 드리신다고 한다.
참 많은 달란트를 가지신 분이시구나...싶었다.
나는 오전에는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이랑 ISM이라고 하는 수아 형통이가 다니는 외국인 학교에 가서 잠시 놀았다.
도서관에도 가보고 체육관도 가보고
초등 중 고등 도서관 체육관이 모두 따로 있었다.
각 나라 사람들이 다 모인듯 한 학교
아이들은 모두 영어를 사용한다.
일본인도 미국인도...
복도도 넓고 좋았다.
비록 학비가 비싸긴 하지만(한달에 100만원) 여기서 졸업을 하면 미국에 있는 본교와 똑같은 졸업장이 나온다니...
그래서 IMF와 911사태 이후로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을 가는 대신에 이곳으로 오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서울의 용산에 있는 외국인 학교보다 비용면에서는 더 적게 든다고
돈많고 실력좀 떨어지는 학생들이 특히 많이 온다고
게다가 외국에서 3년이상 학교에 다닌 학생들에게는 한국의 대학에서 10% 특별전형으로 서울대까지 들어갈 수 있다니..고등학교 들어가기 힘든 학생들이 이곳으로 보내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중고등 학생은 6개월 정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면 간단한 인터뷰를 거쳐서 입학이 허락되고 초등저학년은 아무때나 가면 입학이 된다고 한다.
ESL코스가 있어서 영어를 배우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물가가 싸기에 많은 장점도 있구나 싶었다.
같이 골프를 친 사람중에 필리핀에 94년부터 와서 학원은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한국인 학생만 8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요즘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유학이나 어학연수의 반가격도 채 안되는 가격으로 다녀가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몰랐던 세상이어서 재미있었다.
필리핀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는 밤이다.
상이도 이제는 집이 그리운지 아침에 일어나서 "인자 집에 가나?"라고 물었다.
나 역시 이제는 집이 그립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시간이 빨리 가지 않았다.
11시 넘어서 골프 잘 치고 들어온 남편
마지막 날까지 너무 잘 논 남편땜에 괜히 심술이 나려고 한다.
열째날(2/4/화)
아침에 윤집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내려와서 밥먹으라고
내려가니 혼자 계셨다.
언니는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 회사 문열고 들어올거라고 한다.
아떼들이 아침을 차려주어서 먹고 짐을 모두 들고
차를 타고 공항으로 왔다.
잘 대접해준 언니 부부와 작별의 인사를 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동안 진짜 신세 많이 졌다.
백화점 가서 페소가 없다고 "언니 돈줘" 라고 부담없이 달라하고
아침 점심 저녁 나는 한번도 못사주고 얻어먹기만 했다.
이유는...
나는 가진 페소가 없었다.
남편이 들고 골프나 치러 다니니...
그래도 빌린것은 갚았음
하지만...신세는 엄청 많이 졌음...
공항에서 정신없이 출국수속하고 짐부치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언니가 공항에 가서 사고싶은 것 있으면 사먹으라고 800페소를 주어서 그 돈으로 쵸콜렛이랑 망고쉐이크를 사먹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목사님께 전화했다
아주 불쌍한 목소리로...
"제가 한국에 6시 10분에 도착하는데 7시 공항직항버스타고 대구 갈 수 있도록 가셔서 표 예매하시고 출구에서 좀 기다려주세요. 그 차 못타면 다음차가 8시 30분에 있는데 그럼 대구 도착하면 한시 넘으니까 우리 아들이 너무 피곤해요
김집사님이 우리 차 가지고 나와주시기로 하셨는데 김집사님께도 너무 미안하니까...."
쫑알쫑알 협박에 공갈에...
결국 "악착같이 부려먹는구만" 그러시더니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이히히 기분좋아....
한국으로 가는 길
잘 줄 알았는데 상이는 잠도 안자고 기내식을 너무 잘 먹었다.
기내식은 필리핀에서 만든 음식이어서 그런지 치킨에는 볶음밥이 나오는데 폴폴 날리는 밥
상이는 남김없이 다 먹고 영이는 맛없다고 반을 남기고
비프스튜에는 밥이 하나도 없이 쇠고기와 삶은 당근 오이만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고추장 하나 주었다.
작은 치약만한 것...짤아 먹는 것...
비프스튜에 고추장 발라 먹으니 먹을만했다.
상이는 마지막 비행기 타기가 너무 신나는지 화장실도 두번이나 가고...
비행기는 예정보다 13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처음에 나오는 줄을 몰라서 외국인들 나오는 곳에서 기다렸는데 나중에 보니 한국인 나오는 줄은 아주 짧았다.
진작 그리로 왔더라면 빨리 나왔을텐데...
안타까웠다.
나오니 목사님께서 진짜로 표끊어서 기다리고 계셨다.
면세점에서 산 쵸콜렛을 선물이라고 드리고...
떠나기 전에 미리 예약해두려고 했는데 당일것밖에 예약이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서둘러 버스를 타는 8번 출구로 갔고 겨우 20분정도 밖에 안되는 시간동안 그곳 집사님께서 부탁한 전해달라는 물건을 사람을 만나서 전해주고 바로 버스를 타고 왔다.
함께 저녁먹을 시간도 안되어 멀리까지 와주신 목사님께는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고속버스 타고 오면서 들었다.
그 전에 들었더라면 전화를 안했을텐데 말이다.
언젠가 신세를 갚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렇게 여행이 끝났다.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런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후대해주신 필리핀에 계신 모든 분들과 우리가 여행할동안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너무나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말았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서 또 열심히 살고 더 아껴쓰고 돈 모아서 한번 더 가야지...
마지막으로 제가 본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해봅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필리핀에 살면서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이었어요
한국에 살기 힘들어 한국 살림 다 정리해서 간 사람도 있었구요.
그러나 거기서도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 였어요
보통은 하숙을 한답니다.
인건비가 싸니까 하녀들 두명정도 두고 밥하기랑 빨래 시키면서 한국 유학생들 받아서 학교 보내주고, 부모님 역할을 대신 하는거죠
학교 데려다 주고 학교서 오라고 하면 부모님 대신 가주고...
집은 외국인이라 월세로 살아야하구요
어떤 부부는 호주로 가려고 했는데, 거절당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다고 필리핀으로 날아가 하숙집 운영하며 정착했다고 하네요
한국에 아는 사람들 많으면 하숙생 많이 구하니까...
대부분은 한국 학생들 상대로 하숙해요
특히 교육면에서 외국인 학교나 화교학교 보내면 영어가 되니까 나중에 대학은 다시 한국이나 미국으로 보낼 생각으로 필리핀을 많이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학원을 차린 사람도 봤어요
우리더러 와보라 한 것은 한국에서 학생들 모아 학원으로 보내달라고
우리에게 식사 대접하신 분은 하숙을 할 생각이었는데, 방학 단기 어학연수코스로 아이들 모아 달라고 하더라구요
진짜 그렇게 할 뻔 했어요
한 열명 모아서 그 다음해 겨울방학때 들어갈려고 했는데, 사스가 오는 바람에 엄마들이 못보내겠다고 해서 깨졌습니다.
그 이후론 그냥 접었습니다.
카페를 하는 사람도 봤어요
고등학교때 공부를 못해 아빠가 캐나다로 보냈답니다.
거기서 말만 잘 배워서 자기는 지금 필리핀가서 카페를 차려 돈번다고
영어가 잘 되면 훨씬 싸게 영주권 딸수 있습니다.
돈벌이는 아주 괜찮은 듯 했습니다.
필리핀이란 나라
먹는것은 싸지만 전기세는 비싸요
인터넷도 잘 안되고
인건비가 싸서 일거리가 없을 것 같지만
자기 사업을 하기엔 또 괜찮은 것 같아요
사람 부리기는 좀 힘들듯...
필리핀인들이 책임감이 없고 너무 민주적이라서 ㅋㅋㅋ
한 건축회사가 필리핀 사람만 믿고 일하러 들어갔다가 망해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근데 다른 회사는 한국 사람들 적당히 데리고 들어가 일시킨 덕에 성공했다고...
한국사람만큼 부지런하고, 거의 일중독(???)된 사람도 없을겁니다.
제 홈이 열려 글 가져왔습니다.
오늘도 복된 주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