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이야기

숙제

생각제곱 2005. 6. 30. 00:08

오늘 오후에 KBS 금요아침마당 팀이라면서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방송출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 전에도 몇군데, 전화가 오긴 왔었는데, 이것 저것 묻더니, 연락이 없더군요.

 

아마 원하던 짠순이상이 아니어서 그랬으리라 추측합니다.

 

오늘도 저녁에 한 삼십여분 통화했습니다.

 

그리고 숙제라면서, 너무 짠돌이 같아서 상대방이 속상했었던 때를 꼭 생각해 두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생각이 나지 않네요.

 

그러다가 저는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내가 과연 진짜 짠순이인가?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살아서, 그런 생활이 아직도 몸에 베어있어서,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덜 쓰는 것 뿐인데, 내가 괜히 이 카페에 글을 쓰기 시작했나?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짠순이가 아니어서, 오히려 죄송한 마음마저 드는 밤이네요

 

제 남편 아직도 옷 기워입고, 양말 기워 신습니다.

 

몇주전, 남편이 옷 기워달라고, 티셔츠를 제게 내밀더군요

가슴 부분에 직경 3mm 정도의 구멍이 났더라구요

담배불 자국 절대 아닌, 아주 조그만...

 

세탁소 가서 짜집기 해야 할 정도인데, 짜집기 비용이 만만치 않잖아요?

그냥 검은 실로 구멍을 메꾸라고 하더군요

 

바늘에 검은 실 꿰어서 이리 얽구 저리 얽구, 구멍이 매꿔졌어요

여름 티셔츠지만, 면이 아니라 그런지, 멀리서 보니 표가 나지 않더군요

 

지금도 그냥 잘 입고 다닙니다. 오히려 짜집기 한것보다 표가 덜 나더라구요

 

양말, 구멍나면 꼭 기워달라고 내밉니다.

구멍난 양말을 기워신으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고 하면서

 

어릴적 어머니께서 그렇게 양말 기워서 주셨다고, 추억을 생각하며 기운 양말 신고 다닙니다.

 

이런게 남들 보기엔 청승일까요? 제가 보기에도 자기가 좋아서 옷 기워입고, 양말 기워신고 다니겠다는데, 그렇게 해 주는게 뭐 그리 어렵겠어요?

 

저는 양말 구멍나면, 그냥 신고다닙니다.

전 기워신으면 오히려 이물감 느껴서 싫거든요

 

가끔씩 아침부터 계획에 없던 집에 상담하러 갈때 신발을 벗는 순간 구멍난 부분이 제 눈에 들어오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긴 하지만,

제 구멍난 양말 본 제 고객, 절대 내색 안합니다.

 

그냥 우린 공적인 얘기만 충실히나누게 되고 전 돌아서 나오죠.

 

양말이 없어서, 양말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그동안 내 몸에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해서, 그동안 든 정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인데,

제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재잘재잘 떠든것이, 항상 아끼고 절약하고 살아야만 하는 짠순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솔직히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전 제가 남들에게 한턱 내는 것 좋아하고, 아이들 좋은 것 먹이는 것 좋아해요

 

다만, 이곳 저곳 두루 다니며 여행하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세상 보여주며, 더 좋은 것 먹이는 것(기왕이면 적은 돈 들이고 좋은 것 먹이면 좋을 것 같아서 제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집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고, 제가 못 만드는 것은 또 나가서 사먹기도 하고)에 더 많이 투자하기 위해, 입는 것 조금 아끼는 것이고, 사는 집 조금 더 줄이는 것인데 말입니다.

 

몇년 전에 첫애가 유치원 다닐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49평 아파트 살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32평 아파트 산답니다.

 

49평이 제겐 맞지 않는 옷같았어요. 거기 사는 친구들처럼, 내 아이 여러가지 사교육(성악, 은물, 미술, 논술, 클라리넷이나 바이올린 기타등등) 시키는게 부담스러웠어요

 

꼭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 안하면 왕따되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싫었어요

실지로, 우리 딸애 친구 엄마가 "논술 같이 시키자, 성악 같이 시키자" 할때마다 싫다고 했더니, 나중엔 연락을 끊더군요

 

결국 그 아이랑 우리 아이 사이만 멀어지더라구요

동조하지 않으면 왕따시키는 세상, 그게 싫었어요.

 

매일 매일 청소하는 시간도 너무 많이 들고(하루에 집안 청소 다 못하고 하루에 거실 주방, 방두개, 다음날 거실 주방 어제 못한 방두개 이렇게 청소했었어요)

집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남편을 설득했어요

 

이사를 하건, 물건을 사건, 늘 제가 제안하면 항상 좋다고 따라주는 남편,

 

아무리 생각해도 짠돌이라 짠순이라 서로에게 속상했던 것이 없었네요

아마 저 숙제 다 못해서, 방송출연 못할겁니다.

 

이제 방송국 전화오면 처음부터 안하겠다고 말해야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짠순이 기준에는 맞지 않는 짠순이인것 같아요.

 

그리고 제 글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전 처음 닉네임 짠순이되야징 에서처럼, 짠순이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여겨주시면 좋겠어요.